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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화대학교의 역사와 입학기준, 졸업 후 사회진출

by 오이언니 2023. 7. 20.

칭화대학교의 역사

칭화대학교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국립 연구중심 종합대학교로  중국 명문대학교로 구성된 C9리그의 회원입니다. C9리그는 중국정부가 고등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었으며, 베이징대학교, 푸단대학교, 난징대학교 등 9개 대학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QS와 타임스 등 여러 세계대학평가에서 늘 상위권에 자리하며, 아시아에서는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칭화대학교는 1911년 미국 유학생 교육기관으로 출범했으며, 대학교로 발전한 뒤 중국 정계와 재계, 과학계, 학계 등에서 활동하는 동문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대표적이며, 1957년 양첸닝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칭화대학교는 국가적인 격변기와 외국 강대국과의 갈등이 고조된 시기에 베이징에서 설립되었는데 중국과 외국의 갈등은 중국에서 외세에 대항한 의화단운동으로 절정에 이르렀고, 미국을 포함한 외국동맹에 의해 반란이 진압된 후 청나라 왕조는 동맹국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9년 중국 유학생의 미국 유학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미국에 대한 배상금을 1,080만 달러로 삭감했고, 이 자금을 이용하여 1911년 4월 29일 옛 왕실정원이 있던 자리에 칭화대학(청화학당)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정부가 미국에 보내려고 계획한 학생들의 예비학교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 YMCA에 의해 과학 교수진이 선발됐으며, 졸업생들은 졸업 직후 미국 대학에 3학년으로 편입되었습니다. 1925년 이 학교는 자체적으로 4년 학사과정을 개설하고, 중국학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1928년 국립 칭화대학교(NTHU)로 개칭했고, 제2차 중일전쟁 때 중국대학들은 일본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캠퍼스를 피난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1937년 칭화대학교는 이웃한 베이징대학교, 난카이대학교와 함께 통폐합하여 창샤에 창샤 임시대학교를 만들었고, 이는 후에 윈난성 쿤밍에 있는 국립서남연합대학교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본점령군의 항복과 함께 칭화대학교는 베이징으로 복귀했습니다. 1949년 중국 내전이 종료되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며,  칭화대 총장과 수많은 교수들은 후퇴하는 국민당 정부와 함께 타이완으로 피신했습니다. 이들은 국립 칭화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는 1955년 칭화대학교와 구별되는 타이완의 국립 칭화대학교가 되었습니다. 1952년 중국공산당은 고등교육기관들을 재정비했고 칭화대학교는 공학과 자연과학에 중점을 둔 과학기술전문학교로 간소화되었습니다.1966~1976년 중국은 문화 대혁명 기간에 엄청난 사회정치적 격변과 불안정을 겪으며, 1978년이 되어서야 문화 대혁명은 종료되었는데, 칭화대학교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칭화대학교는 중국 정치와 사회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재등장했습니다. 1980년대에 칭화대학교는 과학기술학교의 모델을 넘어 진화하며 더 넓어진 대학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대학들의 협력을 강조하는 다원적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 시스템에 따라 칭화법대, 경제 · 경영대, 인문 · 사회과학대, 공공정책 · 행정대, 미술 · 디자인아카데미 등으로 재구축되었습니다. 1996년 경제 · 경영대는 미국 MIT의 슬론경영대학원과 제휴를 맺었고 1년 후 칭화대학교와 MIT는 '칭화-MIT 글로벌 MBA'로 알려진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 칭화대학교는 미국 템플대 비즐리로스쿨과 협력 사업을 통해 미국 법학석사(LLM)를 제공하는 중국 최초의 대학이 되었습니다.

입학기준

중국 내국인의 경우, 중국 내 명문고가 아닌 일반 고등학생들이 입학하려면 진(镇)이나 구(区, 예로 서울 강남 8학군)에서 대학입시시험 수석·차석 3등 정도의 성적이 필요합니다. 중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가오카오라고도 불리는 베이징 보통고등학교학생모집전국통일고시를 통한 칭화대 합격률은 평균 0.03%라고 합니다. 2023년 베이징 가오카오 100% 반영 기준 750점 만점에 이과는 677점, 문과는 664점 이상이 입학 신청이 가능한 "마지노선"이었고, 최근 몇 년간 통계를 보았을 때도 전국 가오카오에서 이공계열을 지원한 각 성(省), 시(市)의 최고 득점자 중 50-70%의 학생들이 칭화대에 입학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공계에서는 중국 대학 중 최상위 커트라인을 기록하고 있으며, 문과계열은 전국 2위의 커트라인을 기록하였습니다. 물론 지역에 따른 편차는 존재하지만, 이보다 1점이라도 낮으면 예비에 이름을 올라가거나 추가 합격을 기대해야 합니다. 보통 칭화대나 북경대 합격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경우, 출신 고등학교에서 현수막을 설치해주고 고등학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갑니다. 특히 칭화대와 북경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드문 지역 또한 학교에서 합격자가 있을 때는 학교가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고 선후배들에게 소식이 전파되며, 지역 매체 인터뷰는 기본이고 방송에 출연할 기회도 많습니다. 주변 이웃들의 갑작스러운 축하 전화, 학부모들의 질투와 시기 (또는 경외심), 공부 비법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종 강연회에 초청받아 공부 비법을 전수하는 등 대학교 입학 전후로 많은 호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동네에서 잔치를 열어 축하해주기도 하며 공부의 신(神)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매년 중국 대학교 입시인 가오카오를 치르는 학생이 1,000만 명을 웃도는데, 그중 장원을 해서 대학교 자유이용권을 가진 학생들이 지원하는 곳이 바로 칭화대와 베이징대인데 근래 중국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가오카오 수석으로 고등학교를 홍보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매체나 방송에 타는 현상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출신 고등학교의 전설급 인물이 되는 건 여전합니다. 특기생 제도로 체육이나 미술 특기생들이 가끔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들마저도 국제대회 수상 경력 또는 국가대표급이 되어야 어느 정도 가산점을 받고 입학이 가능합니다.

 

유학생의 칭화대학교 본과 입학은 지역, 국적을 불문하고 치열한데  최근 중국 명문대에서는 현재 학업 성취도 미달 유학생을 뽑을 바에 아예 안 뽑는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칭화대학은 중국어만 하면 들어갔던 1990년대와 2000년대와 다르게 2020년대를 기준으로 중국어랑 영어(토플 110점 이상)를 받아도 탈락하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기존에 칭화대 한국인 입학생이 매년 200여 명이었는데 2017년부터 입학 제도를 한국 대학 수시처럼 바꾸고 나서는 매년 한국인 입학자가 10명 아래로 떨어져 동문회 명맥을 걱정해야 할 수준까지 내려간 상황입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 유학에 비해 중국 대학 입시는 한중 외교 정서까지 입시 당락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지기도 합니다. 자국민 입시에 비해 입학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건 사실이지만, 현재 본과 유학생 전형에 지원하는 경우 고등학교 최상위권 내신 성적과 충분한 전공 관련 교내 활동, 고득점의 공인성적, 일정 수준 이상의 3개 국어 정도의 스펙은 가지고 있어야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졸업 후 사회진출

칭화대와 북경대는 중국 최고 명문 대학으로 불리는 만큼, 졸업자에 대한 향후 거취도 중국 내에서는 매년 화젯거리입니다. 졸업 후 거취가 정해진 칭화대 졸업생은 2022년 기준 약 98%에 달하는데 물론 학과마다 취업률의 편차는 다소 있지만, 평균 95% 이상의 취업성공률을 보이며, 칭화대 졸업생들은 “졸업만 하면 취업할 수 있는데, 뭘 고민하냐”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학부 졸업생 중 무려 80%에 달하는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 또한 유학을 희망한다고도 합니다. 2021년 기준 칭화대 학사, 석사, 박사 졸업생 중 취업자는 총 3,669명이며 이중 70%는 안정성이 보장된 ‘철밥통’ 직장을 택했습니다. 이는 2019년(61.2%)과 2020년(64.9%)에 비해서도 높아진 수치인데 비율을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15.8%는 당정부기관(黨政機關)에, 30.3%는 사업단위(事業單位)에, 23.8%는 국유기업(國有企業)에 취직했습니다. 민영기관(民營企業)과 외자기업(外资企业)에 취직한 졸업생 비율은 각각 26.8%와 2.9%로 합쳐서 30%를 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로 중국 역시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명문대 학생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안정적인 직장을 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대한민국 공무원 시험 지원자가 코로나 이후 급증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과 유학생 또한 졸업 후에는 중국인 졸업생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특히 중국 기업 같은 경우에는 거의 모든 기업에서의 취업이 거의 보장된다고 봐도 무방하고, 해외 유명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한국인 칭화대 이공계 졸업생들은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삼성, SK, 포스코, LG 등 대기업 취직이 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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