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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의 역사와 위대한 인물, 학생성공센터

by 오이언니 2023. 7. 18.

성균관대학교의 역사

성균관대학교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으로 거슬로 올라갑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해 수도에 태학을 설립해서 자제들을 교육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되며 왕조시대 유일한 국립대학이었던 성균관대학교의 역사는 바로 이 고구려의 태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건학원년을 서기 1398년으로 잡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성균관이라는 교명과 현 학교 위치를 고려하여, 즉 조선조 개국 후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중앙의 국립최고학부의 개설을 서둘러 동북방 숭교방(현 명륜캠퍼스 위치)에 성균관을 설립했는데, 이가 바로 성균관대학교입니다. 성균관대학교의 역사는 크게 고전대학시대와 근대대학시대로 나눌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고전대학시대: 고전대학시대를 다시 1기~3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기는 건학기로 1398년에서 1494년까지, 즉 태조때 성균관의 건립으로부터 성종 때까지가 이에 해당됩니다. 그 시기에는 성균관의 건립과 더불어 제도상의 정비, 운영상의 시책이 적극적으로 베풀어져 최고 국립대학의 체제가 완성되었습니다. 제2기는 정체기로 1495년에서 1724년까지, 즉 연산군 때부터 경종때 까지가 이에 해당하며, 그 시기에는 연산군의 폭정 가운데 하나로 성균관을 한때 유연소로 삼았다가 중종이 즉위하면서 그것을 복구한 한심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또 선조 때에는 임진왜란으로 성균관이 온통 소실되었다가 선조 34년에 문묘가 재건되고 다시 5년 후에는 명륜당이 중건되는 곡절을 겪었습니다. 제3기는 부흥기로 1725년에서 1894년까지, 즉 영조 때부터 갑오경장 때까지가 이에 해당되고, 이 시기에는 정치적, 문예적 부흥기를 맞아 성균관의 교육도 자못 활기를 띠었고, 또 실학자들에 의하여 교육제도에 대한 개혁론도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근대대학시대: 근대대학시대도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제1기는 개화기, 제2기는 수난기, 제3기는 발전기로 나뉘어집니다. 그중에 개화기는 1895년에서 1910년까지, 즉 을미년 성균관이 근대적인 대학으로 발족한 때부터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 때까지가 이에 해당됩니다. 1895년 칙령으로 성균관에 3년제 경학과를 설치하고 역사학, 지리학, 수학 등 각종 강좌를 개설하는 동시에 교수임명제, 입학시험제, 졸업시험제를 실시하고 학기제, 연간의 수업일수, 주당 강의시간수를 책정하는 등, 제도상 근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고, 그리하여 성균관은 고전대학으로부터 근대대학으로 일대 전환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수난기는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경학원 안에 명륜학원이 설치되고, 다시 명륜전문학원이 되었다가 1942년 명륜 전문학교로 승격되었는데  이 고등학교기관은 과거 최고국립대학인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한 것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 정통의 계승은 후에 성균관대학의 설립으로 실현되는 것이고, 그조차도 명륜전문학교는 민족해방 1년 전인 1943년 명륜연성소로 개편되어 그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현대대학시대: 발전기는 1945년 민족해방으로부터 현재까지입니다. 제1시기는 성장기, 제2시기로 발전기, 제3시기로 확충기를 들 수 있습니다. 성장기는 단과대학시대라 할 수 있는데, 1945년에서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발전하기 직전까지가 이에 해당되고, 이 시기에는 우선 1945년 9월 민족해방과 더불어 명륜전문학교를 부활시켰는데 명륜전문학교는 과거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한 것은 아니었지만 형식상 절차로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945년 11월 전국유림대회가 열리고, 뒤이어 과거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할 대학의 수립을 위하여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되어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균관대학이 출범하려는 데에 있어서 학봉 李錫九선생이 재단법인 학린사의 거대한 토지재산을 희사하게 되고, 거기에 종전의 명륜전문학교 재단을 통합하여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을 조직하게 되어, 1946년 9월 25일 문교부로부터 성균관대학이 정식으로 인가되었습니다. 이렇게 과거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하여 출범한 성균관대학은 문학부와 정경학부의 2개 학부였는데 동양철학과, 문학과(국문학전공, 영문학전공, 불문학전공), 사학과가 문학부에 속하고 법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가 정경학부에 속하였으나 1950년 6·25 전란으로 대학은 부산으로 피난하여 부산고등학교 안의 임시 천막교사로, 부산시 동대신동의 임시교사로 전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대한 인물

성균관대학교 출신의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에 대해 소개해보겠습니다. 퇴계이황: 경상북도 예안(禮安) 출생으로 호는 퇴계(退溪)입니다. 1527년 향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호조좌랑(戶曹佐郞)·수찬(修撰)·정언(正言) 등을 거쳤습니다.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삭직되었다가 이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고, 이후 정계의 요직을 거친 뒤, 1569년 정계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창설,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습니다. 퇴계 이황은 현실생활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여 끝까지 학자의 태도로 일관했으며, 그는 이언적(李彦迪)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 주자(朱子)의 주장을 따라 우주의 현상을 이(理)·기(氣) 이원(二元)으로 설명하였고, 저서로는 퇴계전서가 있고 시조 작품으로는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 있습니다. 율곡이이: 이이는 조선전기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입니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84년(선조 17)에 사망했으며,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20세에 하산해 유학에 전념했습니다. 이후 총 9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고, 1568년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으며,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 양병설 등 개혁안을 올렸습니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등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다산정약용: 정약용은 조선후기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실학자로 1762년(영조 38)에 태어나 1836년(헌종 2)에 사망했습니다. 남인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면서 개혁사상의 세례를 받았고, 정조 재위기에는 관료로 봉사하면서 과학자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이 시기에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장기간의 유배생활을 했는데, 유배 중에 당시 사회의 피폐상을 직접 확인하면서 그에 대한 개혁안을 정리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을 포괄하는 거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단재신채호: 신채호는 일제강점기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 등을 저술한 학자이며, 언론인·독립운동가입니다. 1880년(고종 17)에 태어나 1936년에 사망했는데, 황성신문 기자, 대한매일신보 주필로서 항일언론운동을 벌이며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고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항일을 고취하는 글과 역사서를 집필하면서 대한독립청년단 조직,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1922년 이후에는 폭력을 통한 민중 직접혁명을 주장하여 무정부주의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1928년 대만에서 체포, 여순 감옥에서 복역 중 순국했습니다. 심산 김창숙: 조선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입니다.  경상북도 성주 출신으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 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입니다. 일제의 감시 아래 한 때는 김우(金愚)로 개명하였고, 일제의 고문으로 다친 뒤에는 벽옹(躄翁)이라는 별호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김호림(金頀林)이며, 어머니는 인동 장 씨(仁同張氏)입니다.. 곽종석(郭鍾錫)과 이승희(李承熙)의 문인입니다.  3 · 1 운동 후 전국의 유림을 규합해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우편으로 제출하였고, 서로군정서를 조직하여 군사선전위원장으로도 활약하였습니다.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학생성공센터

2019년 설립된 학생성공센터의 설립목적은 학생성공을 위한 Gateway, 학생성공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성대형 학생성공 모델 구축, 데이터 기반 학생성공 상담입니다. 학생성공센터의 주요 기능으로는 학생을 맞이하는 첫 번째 상담기관으로 교내 관련 부서로의 연계를 위한 Gateway 기능을 담당하며, 교내 유관기관 간의 유기적이고 전략적인 연계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허브 역할을 합니다. (교내 유관기관 : 건강센터, 공학교육혁신센터, 교육개발센터, 국제처, 대학원, 대학혁신과 공유센터, 인권센터, 장애학생지원센터, 창업지원단, 카운슬링센터, 학생지원팀, 학술정보관 등) 두 번째,학생성공을 위한 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구체적인 직업군과 대학 생활방식에 대한 다양한 강연회와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세 번째, 학생성공센터는 학생성공역량(글로벌, 자기 주도성, 기업가정신, 융합, 시민의식)을 기반으로 한 학생지원시스템을 재편하여 고도화시키며, 핵심역량과 프로그램을 연계한 로드맵을 바탕으로 학생상담을 진행합니다. 네 번째,학생성공센터는 센터별 학생 상담 기록을 취합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그 이력을 통합적으로 관리하여 상담의 효율성을 제고합니다. 또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학업 성과 관리체계를 운영하여 학생 유형에 따른 학업 성과 향상 방안을 수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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